바이올린 연주자 요제프 시게티(Josef Szigeti, 1892~1973)
사색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시게티
헝가리의 천재 소년, 사색적 거장으로 성장하다
요제프 시게티(Josef Szigeti, 1892~1973)는 헝가리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20세기 바이올린 연주사에서 가장 지적이고 내면적인 연주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당시 부다페스트 인근에서 태어났으며, 아주 어린 나이에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10세 무렵에는 이미 '신동'으로 불리며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고, 부다페스트 음악원에서 후에 세계적 스승으로도 유명한 오이겐 이자이(Eugène Ysaÿe)의 제자로 수학하면서 깊이 있는 음악성과 연주 철학을 다지게 된다.
시게티는 1905년경 런던에서의 성공적인 데뷔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서 연주 활동을 이어갔고, 1차 세계대전 전후로는 점차 사색적이고 실험적인 음악 세계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그의 연주는 단순한 기교 과시가 아닌, 작곡가의 철학과 감정을 해석하고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 스타일로 점점 진화했다.
이러한 내면 중심적 음악관은 당시 유럽의 낭만주의적인 감정 과잉 연주 흐름과는 선을 그었고, 일부 청중에게는 난해하게 다가올 수 있었지만, 음악 애호가들과 작곡가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음악의 언어를 깊이 읽는 연주자’로 존경받았다. 특히 그는 바흐, 베토벤, 브람스 같은 고전-낭만주의 작곡가뿐만 아니라, 바르톡, 브루노 발터, 스트라빈스키 등 동시대 현대 작곡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음악 언어의 해석자 역할도 담당했다.
지성과 실험 정신이 결합된 연주 스타일
요제프 시게티는 연주자로서보다도 음악적 사상가로 더 큰 존경을 받은 인물이다. 그의 연주는 기교의 화려함이나 음색의 아름다움을 중시했던 다른 동시대 바이올리니스트들과는 다르게, 곡의 구조, 음악적 논리, 작곡가의 의도를 충실히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의 톤은 다소 거칠고 건조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그것은 의도적인 해석의 결과였고, 시게티 본인은 음악적 진정성과 표현의 정직함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그에게 있어 바이올린은 감정의 도구가 아니라 ‘사유의 매개체’였던 셈이다.
그는 실내악과 현대음악 연주에도 적극적이었으며, 특히 작곡가 바르톡과는 깊은 교류를 맺었다. 바르톡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랩소디>는 시게티를 염두에 두고 작곡되었으며, 두 사람은 이 곡의 초연도 함께 했다. 또한 그는 스트라빈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세계 초연한 인물 중 하나로, 당시 파격적이던 이 곡을 적극 옹호하고 널리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시게티는 "음악이 단순히 아름답기만 해서는 안 된다. 생각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질문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며, 연주를 하나의 철학적 행위로 여겼다.
그의 실내악 파트너로는 피아니스트 클리포드 커즌(Clifford Curzon), 미투조프스키(Mieczysław Horszowski) 등이 있었으며, 그의 실내악 음반은 지금도 진중한 해석의 모범 사례로 여겨진다. 특히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바흐의 무반주 작품군,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에서 보여준 통찰력 있는 해석은 후대 연주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교육자이자 저술가로서의 유산
시게티는 단순한 연주자에 머무르지 않고, 교육자이자 음악 이론가, 저술가로서도 깊은 족적을 남겼다. 그는 연주 경력 후반부에 미국으로 이주해 커티스 음악원 등에서 후학을 가르쳤고, 연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음악적 통찰을 글로 옮기는 데에도 열정을 보였다. 대표 저서인 《With Strings Attached》(번역: 현악기에 마음을 담아)는 연주 경험, 작곡가와의 일화, 음악 해석에 대한 철학을 담은 회고록으로, 단순한 자서전이 아닌 음악적 성찰의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글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연주자와 작곡가 사이의 긴밀한 관계, 연주자 스스로의 해석 기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시게티는 단순히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를 넘어, "왜 그리 연주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으며, 이는 그가 단순히 연주 기술이 뛰어난 사람을 넘어 음악사에서 하나의 지적 유산으로 남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1973년 스위스에서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의 연주와 사상은 수많은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으며, 그의 녹음과 저작은 지금도 음악 애호가들과 학자들 사이에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요제프 시게티는 음악을 생각하는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연주를 통해 철학을 말한 예술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