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디톡스’라는 말이 일상어가 된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라고 말하기 어렵다. 디톡스란 본래 몸속에 축적된 독소를 제거하기 위한 행위다. 즉, 무언가가 우리 안에 과도하게 침투했고,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등장하는 개념이다.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사회 시스템이 개인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기술이 인간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해독해야 할 독소로 인식되는 순간, 그 사회는 방향을 잃은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개인의 절제력 부족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스마트폰을 조금만 덜 보면 된다”, “자기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가장 전형적인 방식이다. 오늘날 디지털 환경은 ‘덜 쓰기’를 전제로 설계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오래, 더 자주, 더 깊이 개입하도록 만들어졌다. 사용자가 스스로 멈추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어 놓고, 그 결과에 대해 다시 사용자에게 절제를 요구하는 사회는 이미 공정하지 않다.
디지털 디톡스가 유행한다는 것은, 일상이 이미 비정상적인 자극 과잉 상태에 놓여 있다는 방증이다. 알림, 추천, 자동 재생, 무한 스크롤은 예외적인 기능이 아니라 기본값이 되었다. 휴식 시간에도 일과 연결되고, 관계는 메시지와 반응 속도로 평가된다. 이 환경에서 ‘접속하지 않음’은 선택이 아니라 불이익으로 작동한다. 결국 디지털 디톡스는 시스템에서 잠시 이탈하는 개인적 탈출구일 뿐,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디지털 디톡스가 하나의 자기계발 상품으로 소비된다는 점이다. 명상 앱, 집중력 코칭, 디지털 금식 캠프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디지털 산업의 일부가 된다. 사회는 과도한 자극을 끊임없이 공급하면서, 동시에 그 자극을 견디는 법을 개인에게 학습시키려 한다. 이는 마치 유해한 환경을 방치한 채, 방독면 착용법만 가르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건강한 사회라면 개인에게 디톡스를 요구하기 전에, 독소를 만들지 않는 구조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디지털 디톡스 담론이 가진 또 하나의 문제는, 침묵을 정상화한다는 점이다. 기술로 인한 피로와 불안을 느끼는 개인에게 “잠시 쉬어라”, “거리를 두어라”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중단하게 된다. 디톡스는 개인적 치유의 언어이지, 사회적 책임의 언어가 아니다. 그 결과 플랫폼의 설계 방식, 노동 환경의 상시 연결성, 교육 시스템의 디지털 의존성 같은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유지된다.
사실 기술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기술을 어떤 가치 위에 설계했느냐다. 인간의 주의력과 시간을 수익 모델로 삼는 사회에서, 디지털 중독은 예외가 아니라 필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이를 병리화하여 개인의 심리 문제나 생활 습관의 문제로 축소한다.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다는 말은, 이미 사회가 기술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고, 그 부담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고백에 가깝다.
건강한 사회라면 디지털 디톡스라는 개념 자체가 필요 없어야 한다. 기술은 사용자의 삶을 잠식하지 않고, 사용자는 의식적인 투쟁 없이도 자연스럽게 연결과 단절을 오갈 수 있어야 한다. 업무 시간 이후의 비연결권, 과도한 알림을 기본적으로 제한하는 설계, 중독을 유발하지 않는 콘텐츠 구조는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로 보장되어야 할 영역이다.
결국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한 사회는 이미 실패한 사회다”라는 말은 기술 혐오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인간보다 효율과 수익을 우선시한 결과에 대한 진단이다. 디톡스가 유행할수록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왜 우리는 쉬기 위해서조차 결단을 내려야 하는가. 왜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한 처방이 필요한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디지털 디톡스는 계속해서 필요할 것이고, 그 사회의 실패 또한 반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