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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톡스-중독을 유발하고 책임은 개인에게 돌리는 시스템

by monsil1 2026. 1. 23.

오늘날 디지털 디톡스는 하나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진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여야 하고, SNS에서 잠시 벗어나야 하며, 집중력을 회복하기 위해 디지털 금식이 필요하다는 조언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 조언이 반복될수록 놓치기 쉬운 질문이 있다. 우리는 왜 ‘디톡스’가 필요한 상태에 이르렀는가, 그리고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디지털 중독을 유발하는 구조는 사회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철저히 개인에게 전가되고 있다.

디지털 디톡스-중독을 유발하고 책임은 개인에게 돌리는 시스템
디지털 디톡스-중독을 유발하고 책임은 개인에게 돌리는 시스템

디지털 중독은 우연히 발생한 부작용이 아니다. 오늘날의 플랫폼은 사용자의 주의력과 체류 시간을 핵심 자산으로 삼는다. 더 오래 머물수록 더 많은 데이터가 수집되고, 더 많은 광고가 노출되며, 더 큰 수익이 발생한다. 이 구조에서 ‘중독성’은 결함이 아니라 성과다.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맞춤형 추천, 즉각적인 보상 구조는 모두 사용자의 행동을 반복시키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되었다. 이러한 설계는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의 연구 결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이 구조를 거의 문제 삼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조절하라”, “의존하지 말라”, “건강한 사용 습관을 가져라”라는 메시지를 개인에게 던진다. 이는 마치 중독을 유발하는 환경을 조성해 놓고, 그 안에서 버티지 못한 사람에게 자기관리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개인의 의지와 절제를 강조하는 담론은 시스템의 책임을 가리는 가장 효율적인 장치다.

디지털 디톡스는 이 책임 전가 구조의 상징적인 결과물이다. 디톡스는 본래 몸에 해로운 물질이 과도하게 축적되었을 때 선택하는 예외적인 처방이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에서는 이 예외가 일상이 되었다. 문제는 독소를 만들어내는 구조는 그대로 둔 채, 해독만을 개인의 몫으로 남겨둔다는 점이다. 사회는 과도한 연결과 자극을 정상으로 만들고, 그로 인한 피로와 불안을 개인이 스스로 회복해야 할 문제로 취급한다.

더 아이러니한 점은, 디지털 디톡스마저 시장화된다는 사실이다. 집중력 향상 앱, 사용 시간 관리 서비스, 디지털 금식 프로그램은 또 다른 상품이 된다. 중독을 유발하는 시스템과, 그 중독을 관리하라는 상품이 동일한 생태계 안에서 공존한다. 이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순환에 가깝다. 개인은 끊임없이 조절해야 할 존재가 되고, 시스템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책임 전가 구조는 특히 취약한 집단에게 더 가혹하게 작동한다. 청소년, 플랫폼 노동자, 상시 연결이 요구되는 직종의 노동자에게 ‘적당히 사용하라’는 조언은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다. 접속하지 않으면 관계에서 밀려나고, 정보에서 소외되며, 때로는 생계 자체가 위협받는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중독을 개인의 문제로 규정하는 것은 구조적 폭력에 가깝다.

디지털 중독 담론이 개인화될수록,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잃는다. 왜 알림은 기본적으로 켜져 있는가, 왜 서비스는 끝을 허락하지 않는가, 왜 멈추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결단이 필요한가. 이러한 질문은 기술의 설계와 사회적 규범의 문제를 가리킨다. 하지만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순간, 이 질문들은 사라지고 자기 성찰과 자기 계발의 언어만 남는다.

건강한 사회라면 중독을 전제로 한 설계를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 개인의 자제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개입을 기본값에서 제거하고, 사용자가 자연스럽게 멈출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디지털 중독을 개인의 나약함으로 규정하는 한, 디지털 디톡스는 끝없이 요구될 것이고, 시스템은 계속해서 책임을 회피할 것이다.

결국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다는 말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중독 상태에 빠져 있다는 신호다. 중독을 유발하고, 그 결과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우리는 계속해서 “조절하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진정한 해결은 개인의 결심이 아니라, 중독을 설계하지 않는 사회적 선택에서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