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스크롤을 멈추지 못하는 자신을 쉽게 자책한다. “또 시간을 낭비했다”, “의지가 약하다”, “자기 관리가 안 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래서 해결책도 늘 개인에게 향한다. 디지털 디톡스를 하자, 사용 시간을 줄이자, 알림을 꺼두자. 그러나 이 모든 조언의 전제에는 하나의 잘못된 가정이 깔려 있다. 스크롤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가 개인의 의지 부족이라는 가정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우리가 멈추지 못하는 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멈출 수 없도록 설계된 구조 안에 있기 때문이다.

무한 스크롤은 우연히 탄생한 기능이 아니다. 화면 아래에는 끝이 있고, 콘텐츠에는 자연스러운 종료 지점이 있다는 것이 인간의 인지 구조에 더 가깝다. 책의 마지막 장, 신문의 마지막 면, 방송의 엔딩 크레딧은 모두 멈춤을 허락한다. 반면 디지털 플랫폼은 이 ‘끝’을 의도적으로 제거했다. 스크롤을 내리는 행위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반사에 가깝다. 손가락을 한 번 더 움직이는 데는 거의 에너지가 들지 않고, 그 대가로 새로운 자극이 즉시 제공된다. 멈춤보다 지속이 훨씬 쉽도록 설계된 것이다.
여기에 자동 재생과 추천 알고리즘이 결합되면 구조는 더욱 공고해진다. 사용자가 다음 행동을 결정할 필요조차 없게 만든다. 무엇을 볼지, 언제 멈출지는 시스템이 대신 판단한다. 이는 사용자의 자유를 확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판단의 부담을 제거함으로써 통제의 강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선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선택을 되찾는 데는 훨씬 더 큰 의식적 노력이 필요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이 구조를 거의 문제 삼지 않는다. 대신 스크롤을 멈추지 못한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다. “적당히 사용하면 된다”, “자기 조절이 중요하다”는 말은 중립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상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전환하는 언어다. 멈추기 어렵게 만들어 놓고, 멈추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이 방식은 디지털 중독 담론 전반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디지털 디톡스가 강조될수록 이 책임 전가는 더 분명해진다. 디톡스는 개인의 결단과 실천을 요구한다. 그러나 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한 결단이 필요해졌는지는 묻지 않는다. 왜 휴식 시간에도 스크롤을 의식적으로 끊어야 하는지, 왜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는 시간이 사라졌는지에 대한 질문은 빠져 있다. 디톡스는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개인에게 적응을 요구하는 임시 처방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이 구조가 보이지 않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강요나 명령이 아니라 ‘편리함’과 ‘즐거움’의 형태로 작동하기 때문에, 사용자는 통제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기 어렵다. 스크롤은 자발적인 행동처럼 느껴지고, 멈추지 못한 책임도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 구조는 투명해지고, 책임은 개인에게 응축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의지를 강조하는 담론은 오히려 현실을 왜곡한다. 의지는 반복적으로 시험받을수록 약해진다. 끊임없이 자극을 제공하는 환경에서 의지만으로 버티라는 요구는 비현실적이다. 이는 수영을 못하게 만드는 급류를 만들어 놓고,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에게 체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흐름의 방향이다.
진정한 해결은 디지털 디톡스를 개인의 과제로 남겨두는 데 있지 않다. 스크롤에 끝을 돌려주고, 자동 재생을 기본값이 아닌 선택으로 바꾸며, 멈춤이 자연스러운 경험이 되도록 설계를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용자가 의식적인 저항을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 멈추는 것이 노력보다 쉬운 환경이야말로 건강한 디지털 사회의 조건이다.
“스크롤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구조다”라는 말은 변명도, 자기 합리화도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자신을 탓하며 디지털 디톡스를 반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반복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멈춤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의 실패를 조용히 증명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