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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톡스-소비하지 않는 시간은 왜 ‘낭비’ 로 취급되는가

by monsil1 2026. 1. 25.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멍하니 창밖을 보는 순간,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몇 분, 잠들기 전의 고요한 틈마저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채운다. 그리고 그 시간을 채우지 못했을 때 은근한 불안이 따라온다. “이 시간에 뭔가 봤어야 했는데”, “괜히 시간만 흘려보냈다”는 생각이 스친다. 소비하지 않은 시간이 ‘쉼’이 아니라 ‘낭비’로 인식되는 사회,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해진 이유는 바로 이 인식의 전환에서 시작된다.

디지털 디톡스-소비하지 않는 시간은 왜 ‘낭비’ 로 취급되는가
디지털 디톡스-소비하지 않는 시간은 왜 ‘낭비’ 로 취급되는가

전통적으로 시간은 노동과 휴식으로 구분되었다. 일하는 시간은 생산의 시간이고, 쉬는 시간은 회복의 시간이었다. 휴식은 비어 있어도 괜찮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에서 이 구분은 무너졌다. 스마트폰은 휴식의 빈자리를 콘텐츠로 채운다. 쉬는 시간에도 우리는 무언가를 보고, 읽고, 반응하며 소비한다. 이때 소비는 선택이 아니라 기본값이 된다.

플랫폼 경제에서 시간의 가치는 소비 여부로 측정된다. 사용자가 무엇을 보고,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는 데이터가 되고, 그 데이터는 광고 수익으로 전환된다. 이 구조에서 소비하지 않는 시간은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공백’으로 간주된다. 플랫폼은 이 공백을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알림을 보내고, 추천을 제공하며, 자동 재생으로 멈춤을 제거한다.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시스템적으로 비정상 상태가 된다.

이 인식은 개인의 사고방식에도 깊이 스며든다. 우리는 쉬고 있으면서도 생산성을 의식한다. 휴식조차 ‘잘’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운동 앱, 명상 콘텐츠, 자기계발 영상은 휴식을 다시 하나의 과제로 만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관리되지 않은 시간, 활용되지 않은 시간으로 평가절하된다. 디지털 디톡스는 이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려는 시도이지만, 동시에 이 압박이 얼마나 깊이 내면화되었는지를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소비하지 않는 시간이 낭비로 취급되는 데에는 자본의 논리가 작동한다. 자본은 흐름을 멈추는 것을 싫어한다. 클릭이 멈추고, 스크롤이 멈추는 순간, 가치 창출도 멈춘다. 그래서 플랫폼은 사용자가 ‘심심해질 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심심함은 새로운 선택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멈추는 순간 사용자는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하는 순간 떠날 수 있다. 소비하지 않는 시간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이탈의 가능성을 내포한 위험한 시간이다.

그 결과 우리는 멈춤에 점점 서툴러진다. 조용한 시간에 불안해하고, 자극이 없으면 허전함을 느낀다. 이는 개인의 성향 변화가 아니라, 지속적인 조건화의 결과다. 디지털 환경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무언가를 보고 있어야 정상이다”, “반응하고 소비해야 연결되어 있다”고. 소비하지 않는 시간은 관계에서도, 정보에서도 뒤처지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디지털 디톡스가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기기를 내려놓는 행위가 아니라, 소비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쉬면서도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디톡스는 불편하고, 심지어 죄책감을 동반한다. 이 죄책감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 중심의 시간 감각이 만들어낸 사회적 감정이다.

그러나 소비하지 않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생각이 자라고, 감정이 가라앉고, 삶의 리듬이 회복되는 시간이다. 문제는 이 시간이 더 이상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디지털 디톡스는 이 존중을 되찾으려는 개인적 저항이지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늘 예외적인 선택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변명이 되어야 하는가. 왜 쉬기 위해 특별한 용기가 필요한가. 소비하지 않는 시간을 낭비로 취급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작동해야 하는 장치로 전락한다. 디지털 디톡스는 그 장치에서 잠시 전원을 끄는 행위다. 그리고 그 행위가 필요해졌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의 체제가 얼마나 왜곡되었는지를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