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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모나의 현악기 제작 전통: 명장의 계보와 현대 장인들의 계승

monsil1 2025. 7. 2. 20:52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 크레모나(Cremona)는 16세기 말부터 18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의 현악기 제작자들이 활동하던 예술의 중심지였다. 크레모나에서 시작된 바이올린 제작의 전통은 단순한 수공예 기술의 집합이 아니라, 철저한 미학과 음향학, 나무 공예에 대한 깊은 이해가 어우러진 고도의 예술적 문화였다. 이 전통의 시초는 안드레아 아마티(Andrea Amati) 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6세기 중반 최초로 오늘날 우리가 아는 형태의 바이올린을 완성한 인물로, 이후 그의 아들 지롤라모 아마티(Girolamo Amati), 그리고 손자인 니콜로 아마티(Niccolò Amati) 를 거치며 크레모나 학파는 체계화되고 정제된 형태로 발전해갔다. 니콜로는 특히 제자 교육에 열정적이었고, 그의 공방에서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안드레아 과르네리(Andrea Guarneri) 같은 후대의 거장들이 배출되었다. 이렇게 크레모나의 명장 전통은 하나의 가족 또는 장인 집단 내에서 비밀스럽고 밀도 높은 방식으로 전수되며 하나의 독립적인 문화 체계를 형성했다.

1. 18세기 후반

18세기 후반으로 넘어가며 크레모나 전통은 한 차례 침체기를 겪게 된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대량생산이 본격화되고, 유럽 전역의 사회적 격변 속에서 수공예 중심의 바이올린 제작은 점차 주변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특히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 사후, 이들의 공방이 문을 닫거나 후계자를 잃으면서 명맥은 끊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 위기 속에서도 크레모나 스타일은 유럽 각지의 장인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계승되었다. 대표적으로 19세기 말 독일 미텐발트(Mittenwald)와 프랑스 미를쿠르(Mirecourt) 등지에서 크레모나 양식을 차용한 상업적 생산이 이루어졌고, 동시에 영국, 체코, 미국 등지에서도 스트라디바리의 도면과 설계를 바탕으로 한 복제품 제작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모방’ 수준에 머물렀고, 크레모나 전통 고유의 예술성과 장인정신을 완전하게 재현한 것은 아니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부활'은 20세기 중반 이후 크레모나 현지에서 다시 일어난 장인정신의 회복 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2. 1950년대 이후

1950년대 이탈리아 정부는 크레모나의 역사적 가치와 악기 제작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국제 바이올린 제작 학교(Scuola Internazionale di Liuteria) 를 설립한다. 이 학교는 과거 아마티,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전 세계에서 유망한 제작자들을 받아들여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 체계적인 기술 전수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프란체스코 비솔로티(Francesco Bissolotti), 지오 바티스타 모라시(Gio Batta Morassi), 루치아노 스바르치(Luciano Svarz) 와 같은 현대의 명장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단순한 복제 작업에 그치지 않고, 과거 명기들의 음향학적 특성을 과학적 분석과 현대 도구를 통해 해석하면서, 오히려 크레모나 전통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특히 비솔로티는 ‘전통적 내부 몰드 방식’을 재도입해 크레모나의 17세기 제작 방식을 현대에 되살렸고, 그의 제자들과 후계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제작자로 성장했다. 오늘날에도 크레모나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악기 제작 중심지로서 수백 명의 제작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은 크레모나에서 교육받고 면허를 획득한 장인들만이 부여받는 ‘리우타이오(Liutaio)’라는 타이틀을 자랑스럽게 이어가고 있다.

3. 현대 계승

이처럼 크레모나의 전통은 단절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확장되고 정교해지는 방향으로 계승되고 있다. 현대의 명장들은 300년 전 제작된 스트라디바리나 과르네리의 악기들을 단순히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남긴 ‘철학’ — 나무의 결을 읽고, 음향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방식, 그리고 수공예를 통한 예술의 완성 — 을 자신들의 언어로 재창조하고 있다. 이는 기술의 문제를 넘어 인간 감성과 예술적 직관의 영역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일본의 마사쿠니 후카야(Masakuni Fukaya), 미국의 사미르 아부라샤드(Sam Zygmuntowicz), 한국의 박종호 같은 장인들은 각자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도 크레모나 전통을 토대로 한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해가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이들은 모두 크레모나 혹은 그 영향을 받은 교육기관에서 수학했고, 자신들의 악기가 갖는 고유한 음색과 감각을 통해 고전과 현대, 유럽과 세계를 잇는 ‘소리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크레모나 전통은 특정 지역이나 시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 음악문화의 유산으로서 전 지구적인 예술가들의 손끝에서 살아 숨 쉬는 살아 있는 유산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