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과 음악 수업 – 14세의 데뷔부터 1939년까지
헨리크 쉐링(Henryk Szeryng, 1918~1988)은 폴란드 바르샤바 근처 제라조바볼라(Zelazowa Wola) 출생으로,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피아노와 화성법을 배우다 7세에 형의 바이올린을 물려받아 연주를 시작했다. 이후 러시아 아우어파의 모리즈 프렌켈(Moriz Frenkel)에게 본격적인 지도를 받은 뒤, 1929년 베를린으로 건너가 칼 플레쉬(Carl Flesch)에게 수학했고, 1933년에는 바르샤바 필하모닉과 함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무대 데뷔를 해 화려한 출발을 알렸다. 1933년부터 1939년까지 파리로 옮겨 자크 티보(Jacques Thibaud)와 더불어 바이올린을,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anger)에게 작곡을 배우며 예술적 기반을 다졌다. 이미 6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그는 “바이올리니스트는 인문학·역사·언어·음향학과 수학까지 공부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다방면에 관심을 둔 인물이었다 .
전쟁 중
외교관·교육자 역할, 멕시코와의 인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쉐링은 폴란드 망명 정부에 참여하여 통역 및 외교관으로 활동했으며, 1941년에는 수천 명의 폴란드 난민을 위해 멕시코를 방문하는 실질적인 외교 임무도 수행했다. 그는 전쟁 기간 중 연합군 병사들을 위해 300회 이상 무료 연주회를 열어 위로와 희망을 전했다. 전후 멕시코 시민권을 취득했고, 1945년 국립 멕시코대학교 스트링스 교수로 부임해 후진 양성에 힘썼다. 1954년 아투르 루빈슈타인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연주 활동에 복귀한 그는 멕시코의 문화대사로서 국제 무대에 복귀, 특히 멕시코와 라틴아메리카 작곡가들의 작품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섰다.
국제적 명성·음반과 바이올린 기증
쉐링은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 및 파르티타 전곡을 2회 녹음하는 등 고전 레퍼토리에 조예가 깊었으며, 루빈슈타인과 베토벤·브람스·모차르트 협주곡을 포함한 다수의 음반으로 찬사를 받았다 . 또한 3번 협주곡으로 유명한 파가니니의 3번 협주곡을 함수곡(發見曲)으로는 최초로 녹음했으며, 그 외에도 브람스·차이콥스키 등 큰 레퍼토리를 남겼다 . 그는 스트라디바리우스 “허큘레스(Hercules, 1734)”와 과네리 델 제수 “Le Duc”(1744) 등 명악기를 보유했으며, “허큘레스”는 1972년 예루살렘에, “Santa Theresa”는 1974년 멕시코에 기증해 젊은 연주자들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 또한 피에르 엘(Pierre Hel)과 진 바우어(Jean Bauer)의 프랑스산 바이올린도 말년까지 사용했다. 1983년 데뷔 50주년 기념 순회공연을 한 후, 1988년 독일 카셀에서 뇌출혈로 향년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쉐링은 정교한 테크닉과 고요하면서도 탄탄한 음색, 그리고 다언어 구사와 학문적 소양을 갖춘 전인적 예술가로 기억된다. 그의 생애는 훌륭한 연주자이자, 교육자이자, 또 외교관으로서의 공헌으로 빛나는 고전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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